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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초 배우기

EBS 다큐프라임 : 앙트레프레너, 경제강국의 비밀 3부 - 부(富)의 법칙

by 경제와의동침 2023.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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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이 영상이 말하는 것은

https://www.youtube.com/watch?v=eBnSkI11huE&list=PL2cXnoEDdx5J2jM_9w2aePKbBh1P8TpFa&index=8 

 

영국의 운하가 만들어진 것은 200여 년 전이다. 당시 이 운하를 통해 버밍엄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버밍엄에서 만든 상품들 역시 이 운하를 통해 영국 전역으로,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15세기 이탈리아 최고 부자 메디치가와 그 라이벌이었던 알베르티 가는 돈 버는 방법으로 금은보화의 발견과 부자에게 잘 보여 상속자 되기, 고리대금업 그리고 도매무역을 얘기했다. 이 중 현실적인 방법은 도매무역일 것이다. 과연 상업만으로 큰 부자가 될 수 있을까?

 

17세기 가장 잘 사는 나라는 네덜란드였다. 무역으로 성공한 암스테르담은 유럽의 경제수도였고, 영국은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찰 정도였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황금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상업으로 경제 강국을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경제강국의 힘은 상업에서 제조업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여기에 돈을 만드는 방법, 부의 법칙이 여기에 있다. 

 

제니 유그로우 ( 작가) : 모임은 매달 보름달이 뜨는 날 이루어졌다. 당시 가로등이 없어 집에 돌아갈 때 빛이 필요했던 것이다. 보름달이 뜨는 날 모인다고 '루나 소사이어티' 라고 불렀다.

 

루나 소사이어티 멤버들은 열에 관심이 많았다. 모일 때마다 열에 관해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에라스무스 다윈(작가, 의사, 발명가)은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도 있었다. 조사이어 웨지우드(도자기 사업가)는 웨지우드 도자기를 만든 사람이다. 조셉 프리스틀리는 산소를 발견한 화학자이다. 제임스 와트는 증기기관 기술자이다.

 

제니 유그로우 ( 작가) : 루나 소사이어티 구성원들은 유명한 학자들은 아니었다. 매튜 볼턴은 14에 학교를 중퇴했다. 아버지는 금속노동자였는데 볼턴 자신도 금속에 관심이 많았다. 볼턴과 달리 다윈은 에든버러와 케임브리지의 대학에서 정식 교육을 받았다. 이들은 친구가 되어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점차 다른 구성원들도 이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말콤 딕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루나 소사이어티의 구성원들은 영국 신분사회의 경계선에 있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영국은 신분의 위계가 엄격히 존재하는 사회였지만 이들은 계급과 계층을 넘어 서로 잘 어울렸다.

 

하는 일도 다른 그들이 잘 어울렸던 건 과학이라는 공통된 관심이었다. 18세기 당시 영국 사람들은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진공상태에서 죽어가는 새에게 공기를 주입하여 극적으로 살리는 것을 보여주면서 호흡에 관한 원리를 설명하는 강연회가 인기였다. 

 

피터 존스 (영국, 버미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당시 이러한 (과학과 기술 관련) 모임은 영국에 매우 흔했다. 루나 소사이어티가 가장 유명했다. 맨체스터, 런던 등지에 있던 많은 모임들이 이렇게 화기애애하고 지적이며 교육적인 분위기였다. 이들은 후에 제조업자나 기업가로 성장한다.

 

피터 존스 (영국, 버미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볼턴은 다양한 지식을 끌어들이는 시스템을 갖췄다. 소호하우스의 식탁은 지식을 공유하는 시장이나 다름없었다. 중요한 것은 볼턴은 지식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사업가로서 돈을 벌 수 있도록 그 지식을 유용하게 적용했다는 점이다. 

 

세어홀은 볼턴의 아버지가 운용했던 공장이다. 볼턴의 아버지는 이곳에서 버클, 단추, 담배 케이스 같은 잡화를 만들어 판매했다. 볼턴의 아버지 사업을 좀 더 발전시키고 싶었다. 

 

말콤 딕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볼턴은 제품의 품질을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것은 버밍엄 산업을 발전시켰다. 값싸고 질 낮은 제품 대신 중산층을 대상으로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한 것이다.

 

상품의 수준을 높이려면 기존 공장과 다른 공장이 필요했다. 이상적인 공장, 소호제작소을 만들었다. 

 

피터 존스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도로시 리처드슨이란 사람이 1770년 5월 31일 소호제작소를 방문한 기록이 있다. "커다란 벽돌 건물이었다. 거의 마을 전체 크기와 비슷할 정도로 컸다." 그녀는 39개의 시설들을 방문했는데, 최소한 40개가 넘는 공장이 더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소호제작소는 하나의 공업단지로 생각할 수 있다. 설계실부터 시작해서 주물작업장, 엔진작업장, 조립작업장까지 모두 다 있었다. 그리고 완제품을 보관하는 창고는 물론이고 전시공간까지 한 울타리 안에 다 모아놓았다. 당시 공장에선 사람들이 직접을 철을 제련했다. 소호제작소에선 압연제작장비 같은 것을 사용했고, 작업도 분업형태로 진행했다. 

 

말콤 딕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소호제작소는 서양 최대의 공장이 되었다. 1760년대에 만들어져 볼턴의 말년쯤에는 성인 남녀와 아이들을 포함해서 직원이 6백 명이 훨씬 넘었다. 다양한 최신기술을 활용하여 제품들이 생산되었다. 

 

당시 소호제작소에서는 금속세공품과 도자기를 많이 만들었다. 디자인이 섬세해서 상류층에서도 반응이 꽤 좋았다. 

 

말콤 딕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소호제작소로 인해 버밍엄은 제조업 중심지로 매우 유명해졌다. 일각에선 버밍엄을 최초의 현대 산업도시로 묘사한다. 공산품을 생산한 최초의 도시라서가 아니라 복잡하고 광범위한 산업구조가 버밍엄에서 발전했기 때문이다. 

 

소호제작소가 유명해지면서 견학을 원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사업가들이나 귀족들이 참관을 오는 경우가 많았다. 

 

"당신의 사업에 사용되는 화학적 비밀과 기계적 힘을 보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 몬태규여사 / 사회개혁가

"과거에는 사람들이 손으로 일을 해야 했지만 이제는 이 놀라운 기계들을 이용해서 빠르게 많은 양을 생상 할 수 있게 되었다." - 쉘번 경 / 정치가

"분업으로 엄청나게 시간을 절약하다니 놀랐다" - 리히텐베르크 백작 / 독일 물리학자

 

말콤 딕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버밍엄은 특히 과학을 산업에 응용한 선구적인 지역이었다. 또한 이곳은 부가 증가하는 곳으로 투자하려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버밍어은 오늘날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 같은 곳이었다.

 

볼턴은 홍보전시관도 따로 운영했는데, 당시로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볼턴과 루나 소사이어티 회원들은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남들이 위험하다고 피하는 것에도 거침없이 도전했고, 거기에서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냈다. 

 

제니 유그로우 ( 작가) : 루나 소사이어티의 장점은 '우리는 할 수 없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항상 '왜 안 돼?'라고 물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1zdx5t0DiI&list=PL2cXnoEDdx5J2jM_9w2aePKbBh1P8TpFa&index=9 

 

당시 공장은 강가에 위치했다. 물레방아로 기계를 돌렸기 때문이다. 공장 동력을 물레방아에 의존하다 보니, 낙차가 적은 것도 곤란했고, 가뭄이 들어 수량이 적어도 곤란했다. 언제 어디서나 공급받을 동력이 필요했다. 

 

피터 존스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볼턴은 큰 공장을 짓고 보니 동력이 부족했다. 인력이나 수력, 풍력, 축력은 너무 비용이 많이 들고 공급도 원활하지 않았다. 볼턴은 새로 건설한 공장에 동력을 제공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기존과는 다른 동력원을 찾았다.

 

볼턴이 대안으로 생각한 것은 증기였다. 물을 끓이면 수증기로 인해 주전기 안의 압력이 높아지고, 이 압력차로 주전자 뚜껑이 움직이는데 그 힘이 증기력이다. 당시에도 증기기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뉴커먼엔진이 대표적이다. 뉴커먼엔진은 볼턴과 와트의 증기기관이 개발되기 전까지 널리 사용된 엔진이다. 증기 압력의 차이로 피스톤이 상하 왕복운동하는 것에 착안한 기관으로 당시에는 획기적이었다. 보일러를 가열할 때 나오는 증기는 피스톤을 밀어낸다. 냉수를 넣어 냉각시키면  

압력이 떨어져 피스톤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증기기관과 연결된 양동이가 위아래로 움직이고, 갱도 바닥에 물을 퍼내게 된다. 뉴커먼엔진은 지하수면포다 깊은 갱도에서 물을 퍼올리면서 펌프의 동력기관으로 많이 사용됐다. 문제는 실린더를 데웠다 식혔다 하는 과정에서 석탄 소모량이 많았다.

 

피터 존스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당시에는 석탄이 가장 싸고 유용한 동력원이었지만 뉴커먼엔진은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당시 제임스 와트는 글래스고 대학에서 두부 제작자로 일하고 있었다. 마침 뉴커먼엔진의 수리를 의뢰받아 연구 중이었다. 그때에는 루나 소사이어티에서도 증기에 대해 관심이 많아었다. 증기에 관한 논문을 쓰기도 했고, 증기로 움직이는 마차와 배를 연구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와트가 증기기관에 연구 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편지를 썼다. 볼턴과 와트는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새로운 증기기관에 관해 고민했습니다. 와트는 글래스고 대학에서 소문난 기술자였다. 뉴커먼엔진의 연료 손실을 줄이는 방법은 쉽게 찾지 못했다. 

 

말콤 딕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마침낸 와트는 뉴커먼엔진의 효율성을 개선할 방법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분리응축기의 개발'이었다.

 

뉴커먼엔진(1705)은 실린더 전체를 가열했다 냉각하는 구조다. 와트는 실린더와 분리된 별도의 응축기를 만든 것이다. 실린더 내부가 증기로 인해 압력이 높아졌을 때, 관을 통해 뜨거운 증기를 뽑아내고 응축기만 냉각하는 방법이다. 와트가 설계한 증기기관을 뉴커먼엔진의 석탄소모량의 1/4 정도로 줄일 수 있었다. 증기를 훨씬 값싸게 이용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와트의 증기기관이 특허를 받았다. 볼턴은 와트의 증기기관이 돈 버는 기계가 될 것이다라고 확신했었다. 

 

제니 유그로우 ( 작가) : 볼턴은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이었다. 증기기관이 미래의 산업뿐만 아니라 운송수단 등의 주요 동력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볼턴은 증기기관의 잠재력을 알아봤던 것이다. 

 

증기기관의 가능성을 알아본 사람은 여럿이었다. 많은 사업가들이 와트의 증기기관에 관심을 보였고, 와트는 존 로벅이라는 사업가와 계약을 했습니다. 로벅이 증기기간의 연구개발비를 부담을 하고 와트의 동업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눈앞에 서서 돈 벌 기회를 놓쳤다는 데 볼턴은 대단히 실망을 했다. 생각 끝에 볼턴은 존 로벅에게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갑자기 존 로벅이 파산을 했다. 로벅에겐 안된 일이지만 볼턴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이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 것이다. 론 로벅에게 빌려 준 돈 1,200파운드 대신 와트의 증기기관에 관해 특허권을 받기로 했다. 

 

피터 존스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볼턴은 미래의 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축력이나 인력이 아닌 과학기술을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투자를 꺼리지 않는 모험적인 면에서도 볼턴은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볼턴은 와트를 버밍엄으로 오게 했다. 루나 소사이어티의 회원이 된 것이다. 그때 다시 한번 확신을 했다. 우리가 큰 일을 해 낼 것을. 우리는 회사를 만들었다. 볼턴은 와트가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소호 제작소 내부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필요한 장비와 인력을 제공하기로 했다. 

 

마크 카슨 (영국 레딩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볼턴과 와트는 타인을 판단하는 좋은 능력을 가졌고 서로의 협력이 이로운 것임을 알아봤기 때문에 만났다고 본다. 

 

문제는 특허기간이었다. 16년의 특허기간 중 이미 6년이 지났고, 남은 기간 동안 증기기간을 개발하는 건 불가능했다. 의회에 특허 연장 청원을 하기로 했다. 당시 특허 연장이 법에 위배된다고 했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에드먼드 버크가 대표적이었다. 

 

패트릭 오브라이언 ( 영국 런던정경대학 명예교수) : 버크는 너무 긴 특허기간이 발명을 저해한다고 생각했다. 볼턴은 의회의 인맥을 이용했다.

 

증기 기간 특허 연장을 놓고 법정 공방은 치열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특허은 연장해야 했다. 만약 실패하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와트의 연구도 나의 사업도. 영국의회는 와트의 특허를 1800년까지 연장했다. 

 

피터 존스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볼턴이 특허기간의 연장을 요구한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는 뉴커먼엔진을 개량하기 위한 노력과 투자에 대해 보상받기를 원했다. 와트의 증기기관 개발은 단기간의 기술독점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17, 18세기 유럽 대부분은  농업사회였다. 제한된 토지에 인력과 자본을 더 투자해도 생산량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 그리고 농산물 무역도 한계가 있었다. 제조업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는데 그 선두 주자가 영국이었다.

 

피터 존스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영국은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18세기 후반이 되면 인구도 급속히 늘어나게 된다. 발명가들이 늘어나고 기술혁신이 가속화하면서 더 이상 농업생산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에 제조업을 육성한 것이다. 

 

영국에는 '벽난로 세'라는 아주 특별한 세금이 있었다. 불을 사용하는 화로에 부과하는 세금이었는데 꽤 높은 편이었다. 

 

스티븐 핀쿠스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 : 제품을 생산하려면 열이 필요했다. 설탕을 정제하거나 적정온도에서 천을 염색하는 데도 쓰였다. 특히 금속을 이용한 산업에는 수많은 화로가 필요했다. 

 

반면, 농사를 짓는 토지세는 낮았다. 많은 사람들은 벽난로세를 내는 제조업 대신 세금 부담이 적은 농업을 택했다. 

 

스티븐 핀쿠스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 : 그런데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영국의 세금체계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영국의회는 제조업 분야의 벽난로에 매겼던 모든 세금을 없앴고, 반대로 토지세는 전례 없는 높은 수준으로 올렸다. 농업사회에서 제조업 사회로 이동한 것이다. 이것은 매우 근본적인 변화였다. 

 

영국을 제조업 사회로 이끈 것은 의회였다. 18세기 영국의회는 왕과 귀족뿐만 아니라 상인들과 제조업자들까지 폭넓게 대변했다. 청원제도 대표적이다.

 

스티븐 핀쿠스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 : 마을에서 생산한 것들을 시장에 내가 팔기 위해서는 운하나 도로가 필요하다는 내용들을 썼다. 청원문서들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의회에 쏟아져 들어왔다. 

 

의회에 통과한 법안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왕정복귀부터 명예혁명 전까지 통과한 법안은 500여 권에 불과했다. 명예혁명 개기로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18세기말에 이르러서는 수천 권이 의회에서 법안으로 제정됐다. 이 중 경제 관련 법안이 23%를 차지했다. 이들의 법안은 앙트레 프레너 혁신을 지원했다. 

 

스티븐 핀쿠스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 : 의회가 각종 사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송병건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 명예혁명을 거치고 나서 영국의회는 법치주의와 재산권 확립에 관심이 지대했다. 그리고 이것은 앙트레 프레너들이 정말 반길만 했다. 왜냐면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혁신의 과실이 스스로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확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8S5JqJwPRmw&list=PL2cXnoEDdx5J2jM_9w2aePKbBh1P8TpFa&index=10 

당시 와트의 증기기관을 기다리느냐 낡은 증기기관 교체를 늦추는 광산이 많았다. 작업은 생각보다 속도가 나지 않았고, 와트는 불안해했다. 대부분 완벽주의자들이 그렇듯이 와트는 매세 비관적이었다. 

 

말콤 딕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와트는 함께 일하기 어려운 사람이면서 대단히 완벽주의자였다. 그는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끊임없는 격려가 필요했던 사람이었다. 

 

새로운 증기기관을 개발하고 사업화하는 것은 와트에게, 볼턴에게 모험이고 도전이었다. 막대한 비용, 시간이 투자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루나 소사이어티의 회원들에게 재료나 기술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서 와트의 연구를 지원했다. 

 

말콤 딕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볼턴의 노력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볼턴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폭넓은 인맥과 마케팅 능력을 가졌고 인력과 보상체계를 효과적으로 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는 사업가로서 매우 중요한 자질이다. 

 

1776년, 볼턴과 와트의 첫 번째 증기기관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같은 석탄량으로 뉴커먼엔진보다 4배는 더 오래 작동할 수 있는 증기기관이었다. 

 

피터 존슨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첫 번째 증기기관의 높이가 10 ~ 15미터로 피스톤 운동에서 발생하는 굉음과 함께 엄청난 양의 물을 퍼 올렸다. 

 

거대한 덩치에서 터져 나오는 굉음, 거기다 쉴 새 없이 물을 퍼올리는 증기기관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피터 존슨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소호제작소에서 처음으로 증기기관이 설치되었을 때, 제작소 사람들은 '괴물'을 뜻하는 '빌지 밥'이라고 불렀다. 증기기관의 크기와 소리는 무척이나 컸고, 기관에서 뿜어 나오는 먼지와 연기도 엄청났다. 한마디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빌지 밥', 멋진 이름 아니냐?  그 괴물이 세상을 바꿨다. 원래 낯선 것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놀라고,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기존에 익숙했던 것은 파괴되고 사라지게 마련이다. 볼턴은 혁신이란 그런 거라 생각했다.  

 

말콤 딕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증기의 힘 덕분에 더 이상 인력이나 수력, 풍력을 이용할 필요가 없어졌다. 증기기관의 개발은 산업생산을 바꾸어놓았다. 

 

증기기관은 영국의 산업 전체를 변경시켰다. 18세기 인도 면화 45kg를 실로 가공하는데 5만 시간이 걸렸다. 증기기관 방직기로는 300시간이면 충분했다. 생산성이 160배나 증가한 것이다. 증기기관은 모든 산업에 폭발적으로 이용됐다. 증기기관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 줬고, 가격도 획기적으로 떨어졌다. 증기기관차 등장으로 본격적인 철도 시대가 열렸다. 철도로 통해 철광석과 석탄이 전국으로 운반된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제품들은 증기기관차와 증기선을 통해 전 세계로 팔려나갔다. 영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마크 카슨 (영국 레딩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증기력은 금속생산의 더 나은 방법으로 이어졌고, 그것이 철도로 통한 고속 주행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영국의 앙트레프레너들은 증기의 잠재력을 현실로 구현한 것이다. 

 

16, 17세기 유럽 대부분 도시의 임금 수준은 비슷했다. 그런데 산업혁명기를 지나면서 영국 노동자의 임금은 급격히 높아졌고, 다른 나라와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그리고 산업혁명 후 영국은 17세기 가장 부유했던 네덜란드의 부를 추월했다. 부자 나라의 순서가 바뀐 것이다. 

 

당시 영국 신문에는 향수나 머리 손질, 드레스 원단등의 사치성 광고와 끓이는 커피의 기호성 식품의 광고가 봇물을 이룰 정도였다. 산업혁명으로 영국은 유럽의 변방에서 중심이 되었다. 

 

말콤 딕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18세기말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회였다. 중산층뿐만 아니라 하층계급도 잉여소득이 있었다. 영국인들은 생활필수품뿐만 아니라 사치품에도 돈을 쓸 여유가 있었다.

 

송병건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 산업혁명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평균적인 삶의 질을 향상했다. 산업혁명은 인구의 부양력을 굉장히 크게 높였다. 동시에 1인당 생활수준도 높아진 것이다. 이것이 산업혁명을 통해서 앙트레프레너가 만든 세상이다. 이것이 인류가 최초로 경험하게 된 새로운 세상인 것이다.

 

사람들은 볼턴이 없었으면 와트의 증기기관도 없을 것이라고 하는데, 그건 와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볼턴과 와트가 증기기관을 처음 만든 것이 아니다. 물론 뉴커먼도 아니다. 그보다 100년 전 프랑스의 물리학자 '드니 파팽'이 증기 시험을 시작했다. 

 

피터 존슨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드니 파팽은 프랑스의 유명한 과학자였고, 증기를 이용한 시제품을 만들어낸 기술자였다. 그는 초기 모형 수준의 증기압력조리기를 발명했는데 압력을 이용해 음식을 빠르게 조리하는 기술이다. 안정성이 보장된 제품이었다.

 

드니 파팽이 시연을 한 곳은 프랑스가 아니라 영국이었다. 당시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로 친교도를 추방하고 탄압했다. 그래서 친교도였던 드니 파팽도 영국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만약 드니 파팽이 프랑스에 있었다면 산업혁명이 프랑스에서 먼저 일어났을까? 

 

피터 존슨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드니 파팽이 가톡릭으로 개종하고 프랑스에서 증기기관 연구를 계속했다면 더욱 진전된 증기기관을 개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디어로 모형을 만드는 것과 장비나 기계를 이용해서 상업적으로 실용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프랑스가 산업혁명을 이끌어내지 못한 건 과학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기술의 문제였다. 신분제 사회였던 프랑스는 과학자와 기술자의 교류가 활발하지 못했고, 기술혁신도 불가능했다. 

 

피터 존슨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그것은 프랑스가 가진 문제였다. 증기력에 관한 기술을 사거나 훔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에선 기술자들이 없었으므로 증기기관을 개선할 수 없었다. 

 

조렐 모키어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하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십, 수백 개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다 작동해야 한다. 발명가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필요한 건 실력 있는 공학자와 기계공과 기술자들이다. 청사진을 바탕으로 한 두 개 아니라 수백, 수천 개를 만들 수 있는 기술자가 필요하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바로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볼턴의 소호 제작소에는 솜씨 좋은 기술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와트의 설계도를 구체화하고 증기기관이 실제 움직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피터 존슨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증기기관의 중요한 요소는 실린더이다. 실린더의 오차범위가 작어야 하고 50인치의 실린더라면 깊이도 정확히  50인치 여야 한다. 소호제작소의 천공기술 발전 덕분에 실린더와 실린더통의 공차가 18세기 영국 동전 1실링만큼 얇았다. 

 

말콤 딕 (영국 버밍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증기기관은 중요한 기계에 기여한 집단적 기업과 집단적 사고의 좋은 예이다. 와트의 증기기관을 18세기말 단순히 한 사람이 만들어 낸 것으로 보는 것 분명 잘못이다. 정말 크게는 볼턴이 그리고 어느 정도는 당시 상황이 또 볼턴이 고용한 존 윌킨슨 같은 숙련공등이 함께 만든 것이다.

 

드디 파팽은 조국인 프랑스에 돌어가지 못했고, 말년에 독일에 머물면서 증기선을 제작했다. 시험 운항을 시도했지만 그 지역 운항을 독점하던 뱃사공 길드에게 저지당했다. 증기기관이 자신들의 이윤에 위협할 것이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파팽의 증기기관은 파괴됐다. 그렇게 드니 파팽의 꿈도 끝이 났다. 파팽이 사라진 후 뉴커먼엔진이 개발됐고, 볼턴과 와트의 증기기관이 개발됐다. 그리고 영국은 산업혁명의 선두에 서게 됐다.

 

송병건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최초로 일어난 이유를 설명하는 유력한 주장의 하나가 뭐냐면 혁신에 필요한 유용한 지식에 접근하는 비용이 낮았다는 것이다. 기초 과학 수준은 당시 영국이 주변국 프랑스에 비해 높지 않았다. 대신에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기계를 만들고 설치하고 필요한 개량을 하는 측면에서는 영국이 훨씬 강했다는 것이다. 기술자, 과학자, 또 현장에서의 숙련 노동자들이 기업가들과 협업을 하고 함께 고민을 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분위기가 영국에서 훨씬 좋았다는 것이다. 

 

단언컨대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유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영국의 과학자와 기술자, 기업가들, 루나 소사이어티가 산업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당시 이름은 달랐지만, 루나 소사이어티와 같은 모임은 상당히 많았었다.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루나 소사이어티, 그들은 앙트레프레너였고, 영국의 산업혁명을 이꾼 주인공들이었다. 

 

이제 돈을 만드는 방법, 부의 법칙에 대해 얘기할 때가 된 것 같다. 볼턴은 증기기관 제작과 기술 자문 물론 증기기관을 이용한 사업에서 돈을 벌었다. 그는 거기서 나온 이윤을 다시 기술 개발에 투자하면서 부자가 됐다. 이 모든 것은 증기기관이라는 기술혁신이었다. 기술혁신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를 부자로 만듭니다. 이것이 매튜 볼턴이 생각하는 돈 만드는 방법, 부의 법치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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